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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안 보기
  • 문틈 시인
  • 승인 2017.08.03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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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안 보고 산다” 하면 지인들은 “그럼 심심해서 무엇을 하고 하루를 보내느냐?”고 묻는다. 텔레비전을 안 보면 하루 보내는 일이 무척 무료할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모양인데 난 되레 옹글진 시간을 보낸다.

내가 텔레비전을 안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쓰잘데없는 뉴스, 무엇에 쫓기듯 다급하게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클로즈업한 장면들이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안 보면 그만인 것을 가지고 무엇 때문에 이미 예능프로가 되어버린 정치평론갑네 하는 이들이 떠드는 시시콜콜한 잡담 같은 것에 시간을 내어 준단 말인가. 텔레비전에 비치는 어느 것도 내 삶에 보탬 될 것이 없다.

내일 저녁 9시 뉴스를 나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교통사고, 폭염, 사드, 북핵, 트럼프, 아파트 투기…. 시청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뉴스들이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카메라 앞에서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예능인들이 나와 무엇이라고 해쌓는 것에 넋을 팔고 있을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실생활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뉴스를 보느라고 저녁 9시의 귀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

사람들이 떼로 등장해서 흰 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있느니 차라리 먼 산 바라기를 하는 것이 열 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한 조각 흰 구름이 이 쪽 산봉우리에 머물다가 저 쪽 산봉우리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혼자만의 그윽한 시간을 어찌 바보상자 앞에 멍 때리고 앉아 있는 것에 빗대랴. 그래서 내 집엔 텔레비전 수상기가 아예 없다. 나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개는 책을 본다. 그리고 글을 쓴다. 자주 녹음이 우거진 자연의 초대에 응해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펴들고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빗방울들이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준다.

빗방울 소리 하나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점자처럼 느껴진다. 그 빗소리들은 마치 우주만물에 대해 기록된 고대문서를 접하는 느낌을 준다. 책보다는 자연이 내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일러준다. 물론 내가 다 알아보지 못해서 그렇지 자연은 엄청난 도서관이나 진배없다.

텔레비전 없이 한 10년을 살다보니 이제는 그것이 익숙해져서 병원 같은 데 갔을 때 틀어주는 텔레비전을 잠깐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텔레비전 해악론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역사 다큐멘터리나 해외여행 같은 프로들은 견문을 넓혀주는 교양을 전해준다. 그렇지만 그런 류의 교양이라면 책이 훨씬 더 낫다. 더구나 시간의 제약과 편집으로 영상이 흐름을 건너뛰기 일쑤여서 그런 식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에 별 흥미를 못 느낀다.

텔레비전을 안 보면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다. 텔레비전이 내 대신 생각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내 금쪽같은 시간을 텔레비전은 알게 모르게 약탈해간다. 정 하는 일이 없어서 그냥 무료하게 있더라도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전라도 말로 ‘정신 사납게’ 하는 것이 텔레비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날마다 텔레비전 앞에서 귀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이 일평생 대체 몇 시간이나 텔레비전을 보며 지낼까. 한 통계에 따르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수면 시간이 26년쯤 되고,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11년이나 된다고 한다. 인생의 8분의 1, 혹은 9분의 1을 텔레비전을 보면서 산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텔레비전 안 보는 이유를 대면 “사람 사는 것이 그렇고 그렇지 별나게 살 게 무어냐?”고 대든다. 자연과 조응하는 삶, 자연의 축복 속에서 사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의 스승은 자연이다, 라고 감히 말한다. 자연은 신비하고 놀랍고 감동적이고 경이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그랬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송하느니 앞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는 것이 진짜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스무 배는 낫다. 어젯밤은 ‘오래된 TV’를 쳐다보았는데 반달이 붉은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붉은 테두리가 진 달이 뜨면 그 다음날 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 내일은 비가 오려나 보다, 하고 잠들었는데 영락없이 오늘 비가 왔다. 오래된 TV는 나 같은 사람하고 마치 선문답하는 것 같은 시간을 선물한다.

철학자 볼테르가 말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길고도 짧고, 가장 빠르고도 느리고, 가장 작게 나눴다가 가장 크게 키우는 것이 가능하며, 가장 얕보면서도 아끼고, 그것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비천한 모든 것들을 삼키며, 위대한 모든 것들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는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나서 그는 답한다. “바로 시간이다.”라고.

텔레비전에는 그런 생생한 시간을 느낄 수가 없다. 아니, 시간을 빼앗기는 기분이 된다. 텔레비전 때문에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했다고 해도 오불관언(吾不關焉) 이다. 텔레비전에서나 있는 일쯤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을 믿는 사람들이 상상 외로 많다. 텔레비전에 나온 식당, 인물, 사건 같은 시답잖은 것들이 생각을 지배하게 하지 않으려면, 집을 나와 달을 보라.

문틈 시인  webmaster@n541.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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