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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본 광주7, 光州를 化平으로 바꾸려 하다태종실록 6권, 태종 3년(1403) 윤11월 19일 임술 3번째 기사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7.07.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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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하여 부·주·군·현府州郡縣의 이름을 정하자고 청하였다. (---) 

완산完山·평양平壤·계림雞林은 3유수留守를 삼으소서. 위의 세 부府는 모두 예전 왕자의 도읍이니, 마땅히 유수로 칭하여야 합니다.(---)

공주公州는 공산公山으로 고치고, 홍주洪州는 안평安平으로 고치고, 광주光州는 화평化平으로 고치고, 황주黃州는 제안齊安으로 고치고, 함주咸州는 함녕咸寧으로 고치고, 정주定州는 정원定源으로 고치고, 청주靑州는 청해靑海로 고치소서. 위의 일곱 주는 모두 신설한 목이니, 마땅히 강등하여 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태종은) 의정부에 내려서 두 부府와 함께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다. 사헌부에서 좌사간 안노생安魯生 등을 탄핵하여 상소했다.(---)

(태종은) 삼부三府에 내려서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삼부에서 함께 의논하고 말했다.(---)

임금이 헌부憲府에서 논하기를 청한 것이 과당過當하여 유사攸司의 도리에 어긋남이 있다 하여 모두 그 직책을 파하고, 좌사간 안노생 등도 또한 부당하다 하여 모두 밖으로 좌천시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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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에서 도읍의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했으나 사헌부 등에서 도읍의 이름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사간의 역할이 아니다. 즉 월권행위를 했기 때문에 죄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좌사간 안노생 등은 모두 밖으로 좌천시키는 일이 있었다.

좌정승 하윤(河崙)이 사간의 직언에 죄를 가할 수 없다고 반대했으나 많은 신하들이 간관이 그르다고 하여 하윤의 청을 윤허하지 않았다.

결국 안노생은 태종 3년(1403) 7월 좌사간左司諫이 되었으나 사간원에서 지방행정조직 개편에 대해 건의한 것을 두고 사헌부와 갈등이 재현되어 탄핵을 받아 1404년 1월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

광주의 지명이 화평이었던 때는 고려 충선왕忠宣王 원년(1298) 경술에 화평부化平府)로 고쳐 64년간 이 명칭을 사용하다가 공민왕恭愍王 11년(1362) 임인에 무진부茂珍府로 고치게 된다.

정인서 기자  ji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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