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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본 광주5, 김약항 명나라에서 죽다태조실록 12권, 태조 6년(1397) 11월 30일 무인 2번째 기사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7.07.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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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총鄭摠·김약항金若恒·노인도盧仁度의 처가 정윤보鄭允輔의 말을 듣고 발상發喪)하니, 임금이 듣고 말하기를, "황제가 만일 총摠 등을 죽였으면 예부禮部에서 반드시 자문咨文이 있을 것이다. 윤보允輔의 말을 믿을 수 없다."하고, 금하게 하였다.

……

김약항(金若恒)의 자(字)는 구경(久卿)이요, 광주(光州) 사람인데 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의 아들이다. 전조(前朝) 신해년에 과거에 올라 계축년에 전교 주부(典校注簿)가 되고, 여러 번 옮겨 예의 총랑(禮儀摠郞)에 이르렀다.

임신년에 사헌 집의(司憲執義)에 승진하였는데, 임금이 즉위하매 우간의 대부(右諫議大夫)를 제수하고, 을해년에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을 가하였다.

병자년에 명나라 조정에서 우리의 표문(表文)·전문(箋文)의 글자 모양이 틀렸다 하여 글을 지은 자를 보내라고 칙유(勅諭)하였다. 이에 약항(若恒)으로 중추원 학사(中樞院學士)를 제수하여 명나라 서울에 가게 했는데, 정총(鄭摠) 때문에 화를 당하였다.

경진년에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이 상언(上言)하기를, "약항(若恒)의 마음가짐은 강직한데다 국사를 위해 죽었으니, 마땅히 추증(追贈)을 가하여야 합니다."하였다.

우리 전하께서 유사에 명하여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광산군(光山君)에 보국 숭록(輔國崇祿)의 위계(位階)를 증직하였다. 아들이 둘 있으니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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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항(1353~1397)의 할아버지는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김영리(金英利)이고 아버지는 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 이며 어머니는 전법판서 이방(李昉)의 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字)는 구경(久卿)이며 호는 척약재(惕若齋)이다. 

전조(前朝) 신해년이면 고려 공민왕 20년(1371)이다. 이해는 신돈이 역모죄로 처형된 해이다.

김약항이 명나라에 가면서 안주 객관에 머무를 때 지은 시가 전해 오는데 앞으로 닥칠 자기의 운명을 예견한 듯한 내용이라 읽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여관 안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쓸쓸한가. 旅館何寥落(여관하요락)

풍연(風烟)으로 문 밖 들판마저 어둡구나. 風烟野外昏(풍연야외혼)

객지에 회포가 사나우니. 客中懷抱惡(객중회포악)

베개머리에 꿈만 어수선하다. 枕上夢魂翻(침상몽혼번)

땅이 궁벽하니 사는 백성조차 적고 地僻居民少(지벽거민소)

해가 기우니 새들만 지저귀는 도다 日斜飛鳥喧(일사비조훤)

타향의 봄은 적적하고 異鄕春寂寂(이향춘적적)

홀로 난간에 기대어 수많은 걱정을 한다. 百慮獨憑軒(백여독빙헌)

태조 5년(1396) 6월 1일 중국에 구류당하고 있는 사이에 왕이 김약항을 광산군(光山君)으로 봉하였다.

정인서 기자  ji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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