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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이 행복한 국민의 농협, 그 길을 가다
  •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 승인 2017.06.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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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원 농협중앙회장

한국의 농업은 참으로 어렵다. 농촌의 현상은 빠르게 늙어가는 농촌이다. 65세 이상이 40.3%이다. 농가경영주 평균연령이 66.3세이다. 농촌의 고령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러분이 농촌에서 보면 노인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다.

오늘날 3만불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분들이 저 농촌의 노인들이다. 5천만 국민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수많은 시련의 시대를 살 때마다 그 시기가 있을 때마다 농민들과 관련된 수많은 상황에서 300만 농민들은 고개 숙이고 하라는 대로 살아왔던 질곡의 세월에 묻어난 결과가 그것이다.

국민들의 5%밖에 안되는 300만 농민들에게 나머지 국민들은 이제 시각을 돌려주어야 한다. 저분들을 어떻게 인간답게 살게 해줄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고 농업은 저분들에게 모든 후원을 바쳐야 한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얼마나 심한가. 농촌의 삶은 상대적 빈곤감으로 그 질이 떨어지고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은 5,861만원인 반면 농가소득은 3,720만원에 그친다. 도시근로자 대비 농가의 소득비율은 1990년 97.2%에서 2016년 63.5%로 크게 떨어졌다. 농가소득 가운데 1천만원은 농사를 지어 얻은 소득이다. 지난 20년간 소득이 똑같다. 수입농산물 때문에 농사소득은 금액에서마저 제자리걸음이다.

연간 60조 농업생산 가운데 2024년이면 수입농산물이 35조7천억으로 6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농촌이 이런 현상에서 농협은 농민과 국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 고해성사를 하겠다.

농협은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직원은 10만명이고 자산이 470조에 달한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을 통 틀어도 이에 달하는 금융기관은 없다. 조합원은 225만명이고 중앙회 회원 농협이 1,131개이고 자회사가 38개이다. 비료 만드는 남해화학, 씨앗, 증권 등 수많은 자회사가 있다. 농협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고려대에서 평가한 결과는 지난 2005년에 24조원이었다.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금액이다.

관류주의 DNA 바꾸다

농협은 세계 제4위의 농업금융 수준이다. 인도에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 기구가 있는데 얼마전 회장 선출이 있었다. 제가 이제 1년 된 회장이 아무런 연고가 없다. 일본농협 대표와 한국농협 대표를 놓고 세계농협 회장을 뽑는 자리인데 일본은 자산이 없는 실체가 없는 농협이고 한국농협은 자산이 있는 농협이다. 그래서 세계농협 대표로 뽑혔다.

한국농협은 경제단체에 가서 말할 수 있는 참여할 정도의 위상인 데도 농협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았다. 이런 규모와 위치인데도 국민과 농민들이 바라보는 농협은 갑질과 등골을 빼먹고 농협은 잘 살고 농민은 못사는 말을 한다. 농협에 대해 못한다는 평가가 무려 66%에 이르렀다.

그래서 제가 회장이 되려 했던 이유는 이런 관습을 타파해야겠다는 것이 여러 세월동안 묻어난 것이었다. 그래서 3수만에 회장이 되었다. 1961년 농협중앙회가 출범할 때 육군소장이 중앙회장이 되었고 오랫동안 정부가 회장을 정부가 임명하는 시기를 겪었다. 농협 안의 DNA가 관료주의로 흐르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절박한 심정을 안고 끝에 서서 치유하려 한다. 저는 호남에서 60년만에 농협중앙회 회장이 되었다.

농협 회장에 선출된 뒤 당선자 신분으로 2개월 동안 업무 인수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전 회장들이 불명예 퇴진을 해 후임 회장들이 곧바로 취임하고 일을 했다. 당선인 신분 회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사무실 마련하고 인테리어 하고 집기 갖추는 비용이 50억 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런 비용보다는 을지로 한 건물의 지하주차장 창고를 개조해 쓰기로 했다. 소파와 책상, 컴퓨터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10만명의 직원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잘 몰랐다. 그들은 목표달성에만 골몰했다. 장사하고 이익을 내는 것에만 급급했다. 근데 우리 농협의 목표는 협동조합으로서 필요이익을 내고 회원들을 잘 살게 하는 데 근본목적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산 것이다. 농협에 왜 다니는지 오랫동안 잊고 산 것이다. 우리는 목적과 목표를 혼동하고 살았다.

당선자 신분으로 부회장에게 말해 농협이념중앙교육원을 개원하도록 준비시켰다. 2016년 3월 14일 개원했다. 농협의 관료화와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 힘썼다. 임직원 협동조합의 근본교육을 강화시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출퇴근 영접을 중단시켰다. 현관 앞에 내리면 경비 2명이 안내하고 비서실장이 내려와 1층으로 들어가면 전용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여직원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11층 회장실로 가면 임직원들이 도열해서 인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권위주의를 없애고 임직원 엘리베이터 구분도 없앴다.

관행과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힘썼다. 자회사들의 본사가 서울에 있었는데 남해화학은 여수로, 비료회사인 농협케미컬은 대전으로, 농협홍삼은 증평으로 이전했다. 이에 다른 관리비용과 임대료 등을 절약했고 각종 가격을 내릴 수 있었다. 지난해 비료가격이 17%, 농약가격 7.6%, 사료가격 6%가 내렸다.

결국 농용자재 가격은 오르고 농가소득이 없으니 농민이 힘들었던 부분을 개선할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농용자재 가격이 4,300억원을 내렸다. 부대 효과가 다른 농약, 농기계 가격이 내려 간접효과가 1조원이나 됐다. 이는 농협이 존재함으로써 얻어지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의 본질 되찾는 가치 구현

농협이 본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바꾸려면 교육이라는 수단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교육이 아니라 지적 수준이 높은 500명을 불러 무박2일(오후 4시~다음날 새벽 6시) 컨퍼런스를 했다. 나름대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서 성공 가능성을 느끼고 전국 1,131명 조합장에게 연락해 역시 중앙회 대강당에서 같은 방식으로 컨퍼런스를 했다. 이 시간에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 나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교육을 통해 현장이 바뀌도록 노력하고 있다. 전국을 돌면서 직원들을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벽정담, 심야정담을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소통을 하는 근간은 협동조합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농협의 세 가지 틀을 바꾸고 있다. 첫째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둘째는 경영효과성 향상, 셋째는 일하는 방법을 바꿔야 했다. 특히 농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농협이 직접 유통망을 확보하고 공장을 만들기보다 다른 관련 기업과 협업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야쿠르트가 프랑스산 치즈를 파는 데 우리 농협에서 우리 농민의 것을 야쿠르트 전동차를 등에 업고 팔기 위해 상품을 개발 중에 있다. 오리온제과와는 쌀과자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설치하고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10만명의 임직원들이 사회적 태만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일반적인 조직들이 빠른 혁신자들은 15% 수준이다. 농협 직원들은 혁신 리더로서 직응력이 87% 수준이었다. 노동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서 농협 비전을 만들기로 했다. 몇몇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6개월 동안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우리 비전을 만들었다. 우리는 위대한 국민의 농협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비전은 농업인 행복한 국민의 농협이고, 핵심가치는 깨어있는 농협인(農心), 활짝 웃는 농업인(現場), 함께 하는 국민(共感)이라는 농협2020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이를 통해 창조농업지원센터(2016.7.20.)를 개원했다. 이곳에서 농업인들을 교육시키고 기술을 배우고 유통을 배우고 컨설팅을 하기 위해 관련 정부기관 해당 담당자를 상주시키고 지원했다. 또 도농협동연수원을 개원했다. 국민의 농협이 되기 위해 도시와 농촌을 연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민들은 빠른 속도로 잘 살게 해달라고 염원한다. 하지만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는 아픔이 있다. 속도는 매우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네덜란드 시와 2시간만에 MOU

한 번은 네덜란드에 출장을 갔다가 한 대학을 방문했다. 일종의 농협대학이면서 농업진흥청이기도 한 대학인데 그 지역 시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다음 날 오후 비행기로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밤새 생각해보니 그 대학과 우리 농협이 협력하면 우리 농민들이 많은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 호스트 안 데 마스 시의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출, 화훼, 씨앗을 주고받는 MOU를 제안했다. 2시간만에 답변이 왔다. 시장은 2시간 안에 의원들을 시로 요청해 의결을 거쳐 MOU를 통과시킨 것이다. 그 시장은 우리에게 양돈플랜트, 파프리카플랜트, 버섯플랜트를 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신속함에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제주 차파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농가 피해액이 약 249억원이었다. 피해 현장에 다음날 방문해 현장을 방문했는데 제주 무가 전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자회사에 연락해 비료와 씨앗을 무상공급하도록 했다. 이듬해 3월 월동 무와 맥주보리를 수확해 농가소득액이 300억원 이상에 달했다. 적시 파종이 중요했다.

얼마 전 충남도 우박 피해가 있었다. 330농가의 사과 피해가 극심했다. 손해보험 사장이 재해보험금을 연말에 줄 것을 6월말까지 50%를 지급하겠다고 했고, 비료회사 사장이 1억원, 농약회사 사장이 1억5천만원 어치를 공급해준다고 했다. 농협유통 사장은 나머지 사과를 수확하면 모두 수매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제 10만 임직원의 마음속에 농심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스피드경영이 절박한 농협이다. 반드시 이러한 꿈을 펼칠 수 있기 위해 농협 회장이 되었다. 저는 간절함을 갖고 있다. 저는 농협에 근무하는 것이 저의 꿈이었다. 상무, 전무, 조합장, 중앙이사, 중앙회장에 이르는 꿈을 가진 것이다.

농협의 적폐를 없애기 위해 저의 버킷리스트를 적기 시작했다. 저는 3수를 하면서 피그말리온효과를 생각하고 도전했다.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 자신이 되고 싶은 자리에 대한 상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이 글은 2017.5.19. 광주경영자총협회의 금요조찬연수회에서 강의한 내용을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webmaster@n541.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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