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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행복
  • 문틈 시인
  • 승인 2017.05.0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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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행복한가?” 하고 묻는다면 머쓱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현대는 행복을 잃어버린 시대인지도 모른다.

옛날에 비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편리하고 유용한 전자제품들과 훌륭한 의료 서비스, 교육, 교통, 주택, 모든 면에서 더 잘 살고 있다. 이런 형편임에도 사람들은 선뜻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70 고희를 지나 80을 넘어가는 수복을 누리는 장수 세상인데도 그렇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옛날 사람들이 그런 세상에서 살아보았으면 하고 꿈에서나 그려보았을 세상에 발 딛고 살면서도 행복을 못 느낀다면 대체 어디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보릿고개, 돌림병, 환갑잔치, 길쌈, 물 긷고 나무하기, 초가집, 신작로 같은 열악한 배경에서 하루 종일 육체노동과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에는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이 뒤떨어지고 온몸을 움직여야 가까스로 하루 세 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난이 부끄럽거나 불편하지도 않았다.

개천에 나가 멱을 감고, 밤에는 반딧불이를 잡으러 다니고, 모깃불을 피워놓고 덕석에 드러누워 별들을 헤아리면서도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행복감을 그때보다 느끼지 못할까.

답은 간단하다. 아무리 편리한 첨단 문물을 누리고 오래 산다고 해도 사람들의 남에 대한 사랑, 배려, 이해, 동정, 공감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치여 남을 돌볼 겨를이 없는 탓이다. 남을 사랑할 수 없는 비극이 불행의 원천이다.

문명은 첨단으로 발달하는데 그 발달한 문명이 인간으로 하여금 더 복잡한 삶을 살게 한다. 타인들과 더 경쟁하게 한다. 인간이 편리한 문명을 만들었더니 문명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예컨대 인공지능을 만들었더니 인공지능에 맞추느라 인간이 기계를 배워야 한다. 인공지능을 잘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뒤처진다. 기계에 인간이 매여 살게 된다. 이 무슨 문명의 패러독스인가.

철학자 러셀은 행복의 조건을 일, 건강, 열의, 사랑, 흥미, 노력,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의 수용을 제시하면서 이와 함께 불행의 원인으로 경쟁, 불행 의식, 피로, 권태, 피해 의식, 질투, 죄의식, 타인의 여론에 대한 공포를 꼽는다.

행복이란 발달한 문명과 비례적으로 동행하지 않는다. 그 옛날 동굴 속에서 살던 크레마뇽인들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오히려 현대인들보다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러셀은 특히 행복의 대척점에 있는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인식한다. 생명은 우주의 생명이며 뒷 세대의 생명과 분리된 것이 아니며 생명의 물줄기와 결합되어 있으므로 죽음에 대해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설파한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린다. 인간은 우주시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라면 소유나 욕망이나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은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연대하며 작은 것들에서 만족을 느끼는 데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 우리는 매 순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지구에 도착하여 생명을 얻은 것이 목표를 이룬 것이다. 우리 각자는 거대한 생명의 흐름에 있으며 그것에 줄을 대고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인 것이다.

행복이라고 할 때의 복(福) 자를 풀어보면 엣 사람들의 행복관을 짐작할 수 있다. 부수인 시(示)는 ‘보이다’는 뜻이다. 그 옆에 한 일(一)자는 하늘, 입 구(口) 자는 사람, 밭 전(田) 자는 농사, 즉 하늘 아래 사람이 농사를 지어먹고 소박하게 사는 것을 복이라고 여겼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에 복이 있는데 지금 우리네 삶은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행복이란 소유, 경쟁, 비교, 과시,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선천적으로 이미 가지고 태어난 자연과의 조화를 전제한다.

그것은, 생명을 얻어 여기 태어난 것이요, 살아 있음이다. 그러므로 그 외의 모든 것은 덤이다. 기쁨도 슬픔도 희로애락이 다 덤으로 안겨오는 것일 따름이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 벌써 행복을 쥐고 태어났다는 말이다.

시인 윤동주가 ‘서시’에서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노래하듯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 인생길이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문틈 시인  webmaster@n541.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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